비비의 영국생활
플렉시테리언으로 살기 (feat. 비욘드미트) 본문
플렉시테리언 (Flexitarian) 이란-
육식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은 채로 식물 기반 식사의 비율을 높인 식단을 하는 이를 말한다
1. 영국의 비건시장
: 영국에선 한국에 비해 비건/채식주의자 관련 제품을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식당만 가도 비건/베지테리안 메뉴가 많지는 않지만 항상 준비되어 있다. 예전에는 채식주의자가 많아서 관련 상품도 많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영국에 살면서 반대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마트에서 손쉽게 비건제품을 구할 수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호기심이 생기면서 손이 가게 되는 것이다.
2. 내가 처음 채식을 해본 계기
: 태어날 때부터 아토피를 가지고 태어나 거의 모든 육류/밀가루/유제품에 알러지 반응을 보이다보니 가능하면 안 먹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20살 즈음 아토피가 심해져서 팔 전체를 뒤덮게 되었는데, 그때 비건으로 반년을 살았다. 그 당시에는 비건이니 채식주의자니 하는 말도 생소할 때였고, 관련 제품이 있었지만 지금보다 더 열악했다. 그래서 고기를 먹고 싶을 땐 두부를 구워먹는 식으로 고기를 끊었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는데 가려움의 정도가 줄고 상처 투성이 였던 팔이 아물 시간을 주면서 아토피에 큰 차도를 보였다. 그러나 당시 한국에서 비건으로 사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이었다. 대체육이나 제품이 많이 없었고, (성인이 되어도 부모님과 사는 한국 특성 상) 부모님께 나만 채식 식단을 해달라고 부탁 할 수 도 없었다. 또한 준비한다 해도 내가 두부를 먹을 때, 가족들이 앞에서 삼겹살을 먹는다면 참으로 고통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환경적으로도 힘들었지만, 나 역시 딱히 비건으로 영원히 살고 싶은 맘도 없었기에 6개월 간의 짧은 채식 경험을 끝으로 중단했다.
3. 영국에서 다시 맞이한 채식: 플렉시테리언
: 그렇게 시간이 훌쩍 지나 난 어느새 외국살이를 하고 있었고, 비건/채식은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아련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테스코에서 장을 보다 홀린 듯 비욘드미트(비건패티)를 집어들었다. 이왕 비건패티를 샀으니 빵도 계란이 들어가지 않은 것을 골라 그날 비건 햄버거를 해먹었다. 첫 경험/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말이 있는데, 이 비욘드미트로 만든 비건버거의 첫경험은 정말이지 환상적이었다. 딱히 고기가 안 들어가 있다고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맛있었다. 그때부터 난 일주일에 세 번은 꼭 비건 또는 채식 식단을 먹었고 아토피는 크게 개선되었다(+살도 빠졌다).
그렇게 살던 어느날, BBC 라디오를 듣는데 사회자가 '플렉시테리언' 이란 신조어를 설명하고 있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이것은 내가 아닌가? 그날부터 난 누군가 물어보면 '난 플렉시테리언 이야' 라고 말했다. 보통 영국에서는 이렇게 말하면 모두가 알아듣는데,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생소한 개념인 것 같다.
플렉시테리언 (Flexitarian) 이란-
육식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은 채로 식물 기반 식사의 비율을 높인 식단을 하는 이.
쉽게 말하면 세미베지테리언 같은 개념으로 일주일에 하루 또는 하루 이상 고기를 먹지 않고 식물 기반 식사를 하는 것을 말한다. 난 영국에서 혼자 살 때 일주일에 3일은 채식을 3일은 육식을(붉은고기/흰고기/생선 돌아가면서) 나머지 하루는 기분에 따라 자유식을 했다. 현재는 홈스테이 했던 가족 분들과 같이 살고 있어서 평일에는 아주머니께서 요리하신대로 먹고 주말에 남자친구네 집에서 하루, 이틀 채식을 하는 편이다.
4. 비건보다 플렉시테리언
: 나는 비건/ 채식주의자 개념보다 이 플렉시테리언 개념이 더 먼저, 더 많이 퍼졌으면 좋겠다. 맛잘알, 요잘알 한국인들에게 비건/ 채식주의자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 채식관련 제품이 많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가격경쟁력이나 품질 면에서도 유럽/미국 보다 뒤쳐진다. 이렇게 기반이 안된 상황에서 무조건 '환경을 위해 채식! 동물보호를 위해 채식! 건강을 위해 채식!' 을 외치는 것은 역효과와 반감만 일으킬 뿐이다. 그에 반해 플렉시테리언은 진입장벽이 낮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채식을 대중화 하는데 이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엄격한 비건주의자는 그것도 결국 육식이라 비난하겠지만(영국에서도 잡식과 다를게 뭐냐고 조롱하는 밈이 있다), 과격한 접근법으로 1명이 비건이 되는 것 보다 온건한 접근법으로 5천만 국민이 일주일에 하루 채식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은가...!
개인적으로 누군가에게 채식을 하라 권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래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누군가가 비건을 하고 싶거나 육류소비를 줄이고 싶은데 엄두가 안난다면, (엄격한)비건이 아닌 플렉시테리언으로 시작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해보고 본인에게 아니면 안하면 되는 것이고, 맞으면 비건지향으로 더 나아가면 되는 거니까.
5. 마치며
: 쓰다보니 두서없이 주저리 주저리 했는데, 결론은 플렉시테리언 에게 관심 좀 가져 달라는거다.
마지막으로 힘든 여건에도 한국에서 채식/비건/ 플렉시테리언 식단을 하고 계신 분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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