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의 영국생활
강한 자만 살아남는 영국: NHS 의료시스템 본문
1. 미국과 영국의 의료시스템 차이
보통 미국에서 아프면 거지가 된다는 말이있다. 의료비 부담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영국은 그 대척점에 있다고 보면 된다. 영국은 무상 의료 서비스라 의료비 부담이 0 이다(약 처방시 소정이 요금이 발생할 수 있다). 일례로 같이 사는 주니아주머니는 몇 달 전에 무료로 골반 수술을 했고, 아주머니 따님분의 파트너 A도 무료로 갑상선에 있는 종양을 제거했다. 물론 의료보험비를 내니 엄격히 말하자면 무료는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수술들을 추가비용 없이 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큰 혜택일 것이다.
2. 영국의 의료시스템과 약점
영국은 의료시스템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 GP: 일반의가 진찰하는 1차 병원 개념. 거주지 주변에 있는 GP에 환자등록을 해야 정상적인 이용이 가능하다. 등록하면 그 병원만 가야하며,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기 때문에 보통 짧게는 1주일 길게는 1년의 대기기간이 발생한다. (운이 좋으면 당일에 전화해 예약 취소된 시간에 끼워넣어달라 할 수 도 있다)
- Walk-in Centre: GP가 미리 예약을 해야하기 때문에 급하게 병원을 가야하면 walk-in 센터에 당일 방문할 수 있다. 무비자 단기유학생, 관광객도 이용가능하다. 하지만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야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또한 워크인 센터가 주변에 없을 수 도 있다(본인의 케이스).
- A&E: 응급실. 워크인 역시 대기시간이 길기에 응급실로 가기도 한다. 주변 사람들 말로는 워크인 보다는 대기시간이 짧았다는데, 케바케 인 것 같다.
- Private: 개인병원. 여기서의 진료는 무료가 아니며, 모든 비용은 본인이 내야한다. 보통 직장을 다니면 회사에서 이 개인 병원을 지원해준다.
사람들은 보통 GP를 이용하거나, 그마저도 잘 가지 않고 약국에서 산 상비약을 먹으며 스스로 이겨낸다. 그도 그럴 것이 영국에는 ‘영국 병원은 죽을 것 같은 사람은 기어코 살려내고, 별거 아닌 병으로는 사람을 죽게한다’ 라는 말이 있다. 다른 말로, 영국에서 왠만한 병은 GP예약에 껴주지도 않는다. 감기, 감기몸살 따위로 항생제를 받을 생각을 하면 안된다는 말이다. 이런 종류의 진료는 대기줄에서 밀려나고 자기 차례를 기다리다 스스로 낫는 경우가 많다. 운좋게 일찍 진료를 보아도 ‘약국에서 약 사다가 드세요. 물을 많이 마시고 비타민을 드시고 푹 쉬시구요.’ 라는 응원을 말만 듣고 나올 것이다. 여기에 익숙해진 영국인들은 큰 질병이 아니고서야 병원을 갈 필요없다는 주의다.
여기서 영국 의료시스템의 약점이 드러난다. 사실 전화상으로 진료예약을 받는 이가 전문의도 아닌데 환자의 병이 정말 단순 감기인지, 폐렴인지 어찌 안단 말인가? 무상의료로 인해 지나치게 수요가 많다보니, 일상적인 진료를 행정인 선에서 잘라내는 것이다. 그렇다고 더 중한 질병의 환자가 빨리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주니 아주머니는 골반 수술을 위해 4년을 기다렸다. A는 종양이 암으로 의심되어 빠르게 수술을 받았으나 그 역시 당일 수술이 아닌 2주가 넘게 걸렸다.
또 하나의 약점은 서비스의 질이다. 무상 의료가 이뤄지다보니, NHS는 비용절감에 진심이다. 아이를 낳고 임산부를 바로 귀가조치 시키거나, 길어도 하루 정도 입원 시킨다. 골반 수술을 받은 주니 아주머니도 수술 당일 병원에서 묵고 다음날 목발을 짚고 퇴원했다. 갑상선 종양 제거 수술을 받은 A도 회복기간 동안 집에서 요양했다.
3. 항생제를 위한 여정: 항생제 원정대
: 나는 어학연수 당시 무비자로 왔기 때문에 따로 의료보험이 없었고, 유학원에서 연계해준 단기 의료+여행보험을 들고 갔다. 나는 어학연수 기간 중에 딱 한명 몸져 누운 적이 있다. 심하게 감기몸살이 와서 수업을 들으러 가지도 못했고, 인후통, 코막힘, 가래, 기침, 열까지 콤보로 와서 잠도 제대로 들지 못했다. 나는 어렸을 때 중이염을 심하게 오랫동안 앓았기 때문에, 감기가 오래 가지 않도록 조심하는 편이다. 그래서 당장 진료 가능한 병원을 찾기 시작했다. GP는 등록이 안되어 있어서 갈 수 없었다. 같이 사는 주니아주머니와 데이브 아저씨는 곧 있으면 괜찮아 질거라며, 약국에서 산 약을 잘 챙겨먹으라고만 했다. 워크인 센터와 A&E은 너무 멀어서 아픈 몸을 이끌고 갈 수 없었다.
감기 3주차에 들면서 기침이 더욱 심해졌지만, 홈스테이 가족들은 ‘4주 아픈게 보통이지’ 라는, 집 앞 병원에서 전문의를 만날 수 있는, 한국이란 나라에서 온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을 하며 위로했다. 그렇게 4주차에 기침이 너무 심해 이러다가 정말 폐렴에 걸리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 멀어도 택시를 타고 병원을 가야겠다 결심하고 잠에 들었고, 다음날 말끔하게 나았다. 그들의 말대로 4주차에 나아서 신기했지만, 동시에 왜 간단하게 고칠 수 있는 감기로 나의 소중한 한 달을 날려야 하는지 살짝 화가났다.
두번 째로 몸져 누운 것은 유학생활을 하면서다. 겨울방학동안 난 홈스테이 가족들과 같이 지냈다. 어느날 목에 불편한 느낌이 들더니, 다음날 어김없이 그것이 찾아왔다. 편도염. 나는 편도염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있다. 한국에서 편도염을 인후염으로 잘못 진단한 돌팔이 의사로 인해 난 2주 넘게 편도염으로 고생했고 딱 죽기 직전에 제대로 된 의사에게 제대로된 처방을 받고 살아났다. 편도염은 반드시 항생제가 필요하다. 자연치료를 기대하는 것은 좋지 않다. 편도에 더 큰 구멍만 낼 뿐이다.
난 편도염인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급하게 GP예약을 알아보기 시작했다(약국에서는 처방전 없이 항생제를 주지 않는다). 여기서부터 아주 골때리는 여정이 시작된다. 내가 다닌 대학은 홈스테이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당연히 난 학기 중에 머무는 기숙사 주소를 기준으로 GP를 등록했고, 오직 그곳에서만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다른 지역 병원을 이용할 수 없었다. 이 무슨 미친 시스템이란 말인가? 난 홈스테이 주소 주변 GP에 전화를 걸어 나의 사정을 설명했다. 당연히 돌아오는 답변은 NO. 임시 환자등록을 위해서는 서류를 작성해서 제출해야 하며 제출후 2-3주가 걸린다고 했다. 기가 막혔다. 편도염으로 3주면 편도가 다 썩어 문드러지는 것은 고사하고 감염이 귀와 코까지 퍼질 것이 분명했다. 앞 서 말했듯 주변에 워크인, A&E은 없었고 있다해도 당시에 코로나 시국이라 일반 환자는 받지 않았다.
결국 난 의료보험이 있음에도 Private 병원을 가기로 한다. 감염이 퍼졌는지 귀까지 먹먹해진 상황이었다.주변에 이비인후과가 없어 피부과 개인병원에 전화 해 편도염인데 항생제를 받을 수 있냐 물었다. 의사에게 물어보더니 된다고 오란다. 난 버스를 타고 병원을 찾았다. 시골 보건소 보다 열악한 환경에 라이트?(불빛을 내서 입안을 보거나 눈동자 보는)도 없이 핸드폰 후레쉬로 입안을 살피고 여러가지를 물어보더니 항생제 5일치 처방전을 써주었다. 약국에 같이 가서 정말 딱 항생제 5알만 든 약상자를 받았다. 그리고 6만원을 냈다. 집에 돌아오는 길. 고작 이 다섯알을 알약을 받겠다고 고생한 시간들과 6만원이라는 거금에 서러워 눈물이 났다. 항생제를 먹는 2일 간은 먹는 모든 것을 토해내 또 한번 고생했지만, 3일차부터는 몸이 적응했고 5일차에 편도염이 사라졌다.
4. 강한 자만 살아남는 영국
그날 이후 난 헬스장을 끊었고 건강한 식단+ 운동+일찍 취침하는 생활을 유지했다. 한국에서는 귀찮아서 하지 못했던 것들이 영국에서는 ‘여기서 아프면 ㅈ된다’ 라는 생각에 반 강제적으로 실행하게 되었다.
그 덕분인지 그 이후로 감기 한 번 걸린 적이 없다. 영국에서만. 한국에 들어가면 어떻게 몸이 용케 알고 아프다. 사람이 누울 자리 보고 눕는다고, 몸도 지가 어디서 아파야 대접받는지 아는 걸까? 참 웃기다.
안타깝게도 요 근래 감기에 걸려 나의 무감기 기록이 깨졌지만, 이젠 나도 병원에 가겠다는 생각보단 Lemsip(가루감기약)을 먹기 위해 주전자에 물을 끓인다. 이 정도는 이제 내 몸이 이겨낼 수 있음을 알기에.
한국에선 집 앞 5분 거리 병원에서 전문의를 만나 항생제를 처방받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 영국에서는 너무도 힘든 일이다. 그러니 스스로 면역력을 키워 강해지는 수 밖에.
정말 강한자만 살아남는 곳, 영국에서 살고있다.
'영국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더 글로리' 아쉬운 점 & 이해 안가는 점 (2) | 2023.03.12 |
---|---|
영국에 가볼만한 한국식당 리스트 (2) | 2023.03.12 |
영국의 다이소, 프라이마크 (0) | 2023.03.08 |
플렉시테리언으로 살기 (feat. 비욘드미트) (0) | 2023.03.07 |
영국 알바 지원 방법/ ChatGPT 로 이메일 쓰는 법 (0) | 2023.03.07 |